인간의 마음, 남이 잘나가면 싫다

화순투데이 | 기사입력 2019/05/27 [10:18]

인간의 마음, 남이 잘나가면 싫다

화순투데이 | 입력 : 2019/05/27 [10:18]

오래전부터 읽어온 글에서 자료를 찾느라 근래에 다시 읽어보니, 참으로 우리를 감동시켜주는 글이 있었습니다. 수천 글자에 이르는 다산의 상소문 「변방사동부승지소(辨謗辭同副承旨疏)」라는 글입니다.

 

1797년 6월 22일(음력) 정조에게 올린 글이니 바로 다산의 36세 때의 글입니다. 정조도 이 상소문을 읽어보고 깜짝 놀랄 만큼 다산의 글 솜씨와 공명정대한 마음에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상소를 자세히 살펴보니 착한 마음씨의 싹이 온화하여 마치 봄바람에 만물이 자라는 것과 같이 종이에 가득 펼쳐져 있으니 말한 내용을 감격스럽게 들었다.”라고 정조가 감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정조만이 아니라 당시 조정의 고관들도 상소문을 읽어본 사람으로 감동하여 칭찬해주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뒤에 다산을 탄압한 벽파의 영수이던 영의정 심환지는 “상소문이 매우 좋고 그의 심사도 광명스럽다.”고 평했고, 이만수 같은 고관은 “천고(千古)의 명상소”라고 까지 극찬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상소 때문에 그동안 ‘천주학쟁이’라고 온갖 비방을 받으며 벼슬살이가 매우 순탄치 못했는데 “이후로는 정약용은 허물이 없는 사람 될 것이다.”라는 결론이 내려져 정조는 바로 곡산도호부사라는 목민관의 벼슬을 주어 임지로 떠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몇 해가 지나자 정조는 세상을 떠났고, 다산과는 반대 정파인 벽파가 다시 집권하게 되자, 다시 다산을 ‘천주학쟁이’로 몰아 기어코 죽이려했지만 하늘은 다산을 죽일 수가 없어서 긴 유배살이를 하도록 했습니다.

  다산은 정조의 재가를 얻어 천주학쟁이가 아니라는 국가적 판결이 내려졌지만, 반대파들은 언제나 옛 허물을 들춰 정략적으로 이용해 먹은 악습을 지니고 살아갔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로 법률적, 역사적, 정치적 판단이 확정된 사안도 또 들고 일어나 온갖 비방을 일삼는 것과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요,

 

죄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들과 반대파에서 집권했기 때문에 집권한 쪽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무조건 반대하는 악습이 꺼지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로 보입니다. 상소문의 일부를 읽어봅니다.

 

“신이 엎드려 생각건대 천도(天道)는 가득한 것을 싫어하고 인정(人情)은 궁하고 굽히는 것을 애석하게 여깁니다. 오늘날 신이 침체되고 막히는 것이 오래되고 보면 사람들이 ‘아무개는 실상 사악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해를 입고 폐해짐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또한 가련한 일이다.’라고 할 것이니, 이것이 신에게는 복이요, 경사이며, 살아남을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신이 옛날처럼 날아오른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아무개는 옛날 사악한 짓을 한 적이 있는데 저와 같이 좋은 벼슬을 하니, 또한 가증스러운 일이다.’ 할 것이니, 이것이 신에게 있어서는 화(禍)요 재앙이며 죽음의 길입니다.”라는 기가 막히는 내용을 열거했습니다.

  그러면서 정3품 당상관인 동부승지 벼슬에서 물러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먼 하시골 곡산도호부사로 좌천을 당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의 좌천은 살 길이었고 복이었으며 경사였습니다.

 

남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가증스러워 증오에 찬 막말만 해대는 정치인들, 남들만 꾸짖지 말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조금이라도 격조 높은 언어를 사용해보면 어떨까요. 역지사지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들이 잘 나갈 때, 그렇게 막말만 한다면 참고 견딜 수 있을까요.

박석무 드림

 

글쓴이 / 박 석 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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