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기획] 나고야의 바보들

화순투데이 | 기사입력 2019/02/09 [14:29]

[설 특별기획] 나고야의 바보들

화순투데이 | 입력 : 2019/02/09 [14:29]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18년부터 독립PD와 독립영화감독을 대상으로 작품 공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어린 소녀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30년 투쟁을 담은 이번 작품 <나고야의 바보들>은 뉴스타파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 편집자 주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사람들 이야기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다카하시 마코토(76)씨. 그는 전직 교사로 40년 가까이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쳤다. 그는 그동안 한국에 100번 넘게 다녀갔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서다.

다카하시 마코토 씨는 1986년 나고야에 있는 야스타고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40년대 일제가 저지른 태평양전쟁 당시 10대 초,중반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된 여자 근로정신대 사건을 처음 알게 됐다.

▲ 1988년 한국을 방문해 근로정신대 피해증언을 듣고 있는 다카하시 마코토(맨 오른쪽) 김중곤(가운데) 김복례 할머니(맨 왼쪽)

그의 첫 활동은 1944년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당시 목숨을 잃은 근로정신대 소녀 6명의 유가족을 찾는 작업이었다. 1988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진실규명에 매달려왔다.

1988년 12월 나고야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옛 미쓰비시 공장 터에 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웠다. 1998년 11월에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보상과 진실규명을 지원하기 위해 '나고야 소송지원회’를 설립했다.

▲ 2007년 나고야 추모비 앞,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유족들

그리고 10년 후인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지원회는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며 소송비와 항공료를 지원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진행된 재판은 최종 패소했다.

▲매주 금요일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진행되는 금요행동 집회 (2018년 7월 20일 430회 촬영)

재판을 통한 진실규명의 길이 막혔지만, 다카하시 등 소송지원회에 참여한 이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진실투쟁은 재판정에서 미쓰비시 본사로 이동했을뿐이다. 2007년 7월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매주 금요일이면 도쿄 미쓰비시 본사에서 '금요행동' 집회를 열고 있다. 지금까지 금요행동 집회는 450회가 넘는다.

▲ 금요행동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전달지를 나눠주고 있는 소송지원회 회원

강제노역의 피해 진실을 알리고 일본정부와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하루에 전단지 4,50장 나눠주면 다행일 정도다.  주변 반응은 미지근하고 싸늘하다.

심지어 “너희들은 일본인이 맞냐?는 비난도 들어야 했고, “그렇게 한국이 좋으면 한국에 가서 살아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금요행동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매주 금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고야에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온다.

▲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 소송지원회 회원

이러한 노력의 불씨는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2009년 3월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만들어졌다.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위로와 동정을 넘어,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 어린 소녀들이 당해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활동이 시작되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어졌다. 올해로 10년 째 활동하고 있다.

2009년 9월 25일 미쓰비시자동차가 광주광역시에 전시장을 열면서 자연스러운 불매운동과 함께 미쓰비시자동차전시장 철수를 위한 1인 시위가 시작됐다. 200여 일 동안 계속됐고, 결국 2010년 11월 미쓰비시 전시장은 철수했다.

광주 시민들은 일본 정부의 후생연금 99엔(약 1,100원) 지급이라는 치욕적인 결정 이후 2011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명 참여자는 13만 명에 이르렀다.

그해 6월 이 서명용지를 들고 미쓰비시중공업 주주총회가 열리는 일본 도쿄를 을 방문해,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에 직접 전달했고, 미쓰비시로부터 직접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2년 가까운 세월동안 협상이 진행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 사이 2012년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5명이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원고 11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광주고등법원에서 2심 소송까지 승소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라는 초유의 사법 농단에 막혀 대법원 판결까지 3년을 기다려야 했다.

▲ 2017년 5월19일 광주고등법원 2차 소송 손해배상청구소송 증인석에 앉은 다카하시 마코토

그리고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렇게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벌인 30년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일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 할머니들 역시 대부분 구순이 넘는 고령이 됐다.

▲ 다카하시 마코토(76살)

피해 할머니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묵묵히 도왔던 ‘나고야소송지원회’ 회원들도 대부분  백발의 노인이 됐다. 그러나 찬바람이 부는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이들은 매주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도쿄 미쓰비시 본사에 나간다. “원고(피해할머니)의 목숨에 내일은 없다”는 문구가 새겨진 플랜카드를 들고서. 국가를 넘어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금요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나고야의 바보들>을 취재, 제작한 임용철 PD는 전남,광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소외 받은 사람들을 영상에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싸움-동광주병원>,<꿈의 농학교>등을 연출했다. 2009년부터 10년동안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이들을 돕는 일본 소송지원회 회원을 취재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광고
포토/화보/이슈
청풍 화학산 고산 철쭉제 열린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